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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덮인 선자령 비박 - 첫 겨울 백패킹 도전 후기

다녀온곳(국내)

by dunkin 2013. 12. 19.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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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한번 가 보고 싶었다. 눈 덮인 겨울산...

날이 쌀쌀해지고, 겨울이 오면서 어디 돌아다니는게 시큰둥해질 즈음부터 마음만으로 슬금슬금 준비했던 겨울산.
직장 동료와 이런 저런 이야기 하던 중 얼마 전 눈도 왔고.. 주말에 특별한 일도 없는데...
'주말에 갈까?' 라는 즉흥(?)적인 제안에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

그리하여 드디어 백두대간 선자령이라는 곳을 다녀왔다.


백두대간 선자령. 이름은 참으로 거창하지만
출발점이 해발 900미터의 대관령 휴게소에서 부터 시작하기에
정상까지 완만한 경사로 이어지는 쉬운코스.

머리털 나고 처음 가 보는 눈 덮인 겨울 산행이기에
고르고 고른 곳이 바로 이곳 선자령.



토요일 11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출발.
강원도를 향해 가던 중 눈이 온다.
좋아해야 하는 건지 뭔지.. 눈 내리는 겨울산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없다.

즉흥적인 산행이었기에 준비물도 제대로 챙기지도 못해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원짜리 아이젠도 하나 사고, 싸구려 기모 등산바지도 하나 사고..
대충대충 준비해서 무작정 가는 거다.






거의 3시간을 달려 도착한 대관령 휴게소.
언젠가 한번 와 본 곳 같다는 느낌이었는데
알고 보니 다들 한번씩 가 본다는 양떼목장 가는 길의 그 휴게소였던것.

2008/07/26 - [다녀온곳(국내) 대관령 양떼목장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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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로부터 무려 5년이란 세월이 지났구나 ㅠㅜ






같이 산을 오른 직장 동료.

둘 다 겨울 산에 경험이 없긴 마찬가지 ^^;;






미적거리다가 4시가 다되어서 출발했더니 반도 못 갔는데 벌써 해가 지려고 한다.
해가 저무는 설산의 풍경은 아름다웠으나... 곧 컴컴해질 터인데.. 걱정이...

그래도 내려올 사람 다 내려오고 난 후의 한적한 등산로는 참 마음에 든다.







잠깐의 휴식. 한 반쯤 왔나 보다.
쉬운 코스라고는 하나 짐을 한 짐 지고 오르는 길은 평지라도 힘이 드는 법.
매섭게 불어대는 바람에 날린 눈은 등산로를 점점 덮어가고...
발목까지 폭폭 빠지는 길을 걸으니 더 빨리 지치는 듯.






일행이 핸드폰으로 찍어준 유일한 독사진.

보기엔 살 좀 타는 사람 같이 보이네 풉~







어둑어둑한 산길을 따라 한참을 걸으니 저 멀리 풍력발전기의 실루엣이 !!!

드디어 얼추 다 온 모양이다.






해가 지고 컴컴해진 밤하늘.
아직은 미미하게나마 남은 어스름한 약간의 노을빛을 배경으로 그려진
풍력발전기의 실루엣은 낯설면서도 아름다웠다.







사진으로 보기엔 참으로 평온해 보이는 풍경이나
사실 이때 매서운 칼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치고 있었다는...

출발할 때 이미 선자령을 찍고 하산한 살 좀 꽤 다닌듯한 포스를 풍기는 분께 '갈만한가요?' 라고 물으니
바람이 너무 불어서 선자령 근처에서 돌아왔다 라는 말을 전해 듣기도 했고,
이 근방에서 마주친 일행은 선자령에서 내려오는 길이라며, 바람이 너무 불어 텐트를 칠 수가 없어서
비박 장소 찾아 내려오는 길이라는 분도 만났고...
정상에서의 비박은 무리라고 판단되지만 말만 듣고 돌아서긴 좀 그렇고..
일단 정산 근처까지라도 올라가 보기로 했다.


...

다녀와서 후기 찾아보니 오늘 만났던 분들 후기를 다 찾아볼 수 있었는데
우리가 올라간 코스와 다른 쪽, 동해전망대쪽으로 올라온분들은 죄다 바람 때문에 개고생을 했다고..
등산객 절반이 선자령 가던 중간에 발길을 돌렸을 정도라니.. 대단했나 보다.
뭣도 모르고 선택한 코스가 이번 산행의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
한편으론 한 번쯤 그런 바람을 경험해보고 싶다.. 라는 아쉬움도 살짝...





정상 바로 아래 텐트를 치고 ...

그림 좋다!!


먼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일행이 있었는데
선자령 올라갈 만 합니까? 라고 물으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절~대 올라가지 말라고 하길래
우리도 여기서 일단 자리를 잡고 텐트를 폈다.

정상보다는 바람이 덜 불긴 하나 이곳도 바람 때문에 텐트를 펴기 힘들 정도의 바람이 불긴 마찬가지.

폴대 끼우고, 텐트 안에 짐이 가득 든 가방 2개를 넣어두었는데도 불구하고
바람에 훌렁 뒤집어지면서 저만치 떠밀려가는데... 입이 떡~ ^^;






영하 10도가 넘는 날씨에 바람까지 매섭게 불어대는 것과는 다르게
사진은 참.. 편안해 보이는구나...






달빛이 밝아서 마치 가로등 아래에 서 있는 듯 환한 겨울밤.

참으로 낯선 풍경, 낮선 경험.






텐트를 치고, 살짝 언덕 하나를 올라봤다.

언덕 위에 서는 순간 똑바로 서 있을 수도 없을 정도의 바람이 몰아친다.
아... 이래서 선자령엔 올라가지 말라고 하는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대번 들었다 ^^;

아무튼. 언덕에 오르니 저 멀리 용평스키장이 보이더라는..
멋지게 사진 한방 찍어보려 했으나 ... 바람 때문에 아무리 잘 찍으려 해도 저게 최선이었다.

저곳에 콘도 잡고 편안하게 겨울을 즐길 수 있는데 왜 여기까지 고생해서 올라오고 그러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으나... 매서운 바람에 아~무 생각이 안 난다 ㅎ






대부분의 사진의 이모양 ㅎㅎ
똑바로 서 있기 조차 힘들었으니...




 

뭐든 꺼내 드는 대로 얼어붙고, 모든 전자기기는 전압이 뚝 떨어져서 배터리 경고등이 깜빡깜빡..
전화 한 통 걸려고 해도 제멋대로 리부팅되고 ㅎㅎ
뭐 이런 곳이 다 있어!! ㅋ

보기에도 살벌할 정도로 수증기가 그대로 텐트 벽에 다 얼어붙는다 ^^;;;

아침에 해가 뜨니 얼어붙은 게 그대로 녹아서 마치 물새는 지붕처럼
물방울이 뚝뚝뚝 떨어지는 통에 혼났다는 ^^;


딱히 할 것도 없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처음 경험해보는 겨울 산에서의 1박이기에 살짝 긴장도 했고, 걱정도 했으나
침낭 안에 한팩 서너 개 넣고 잠자리에 드니 추위는 전혀 안 느껴지는 게
침낭만 좋다면 얼어 죽을 걱정은 전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오리털 1300g짜리 침낭과, 침낭 커버, 핫팩, 경량 패딩을 입고 잤음.)






다음날 아침.

6시 좀 넘은 시간.

잠에서 깨어 텐트 문을 빼꼼 열고 밖을 내다보니
저 멀리서 동이 터 오고 있었다.

요 앞 풍력발전기까지만 올라가면 근사한 일출을 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잠에서 막 깨어 피부를 파고드는 아침 공기를 접하고 나니...
침낭 밖으로 나가기가 싫어서 일출 구경은 바로 포기 ^^;;

뭐.. 얼마 전 명성산에 갔을 때 일출은 보았으니.. 그걸로 대신하자 ^^;

2013/10/28 - 명성산 백패킹 비박 산행기 - 억새축제 보고, 등산도 하고, 뿌듯하지만 힘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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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 문틈 사이로 요만큼만 구경하고 바로 침낭 속으로 쏙~






그래도 아쉬움에 동영상도 하나 찍어보고....






아침에 일어나서 온도계를 보니... 영하 13도.

물론 더럽게 추운 날씨 기는 하나 예상보다는 살짝 덜한 추위.






아침 챙겨 먹고 나이 훤~해져서야 선자령을 올랐다.

올랐다.. 라고 하기도 뭣한게 요기 언덕만 오르면 바로 정상임.

이렇게 코앞인 줄 알았다면 어젯밤에 한번 가 볼걸 그랬다 ^^;







멀리서 볼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이세상것이 아닌듯한 위용을 자랑하는 풍력발전기.

사진으로는 전혀 그 느낌이 안 나는 건 어쩔 수가 없구나...






여기가 우리나라인가.. 싶은 독특한 풍경.






무턱대고 사진만 찍어보는데... 화각이 살짝 아쉽다.

내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 중에 그나마 가장 넓은 화각을 가진 렌즈를 쓰려면 이따시만한
무거운 DSLR을 가지고 와야 하는데, 그러기엔 좀 부담스러워서 미러리스 카메라를 가지고 왔더니
딱 10%가 아쉽네....





주위 풍경 동영상으로도 한컷 찍어봄.

풍력발전기 날개소리가 대단했다.





이곳이 바로 정상.

추리한 두 남자의 기념사진.

호리호리한 아가씨와 어깨동무하며 찍어야 덜 칙칙할 듯 ^^;;






정상에서 비비적거리고 있다가 만난 등산객 아주머니.

귤도 주고, 복분자 술도 나눠준 맘씨 좋은 분들.

한창 보드 타러 다닐 때 주 활동지였던 성우리조트 앞 둔내에서 오셨다고 한다.
한분은 둔내에서 치킨집 하신다고 하고, 한분은 뭐라 그랬는데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둔내에서 장사 오래 했다고 하니 분명 한번쯤 시즌방에서 치킨도 시켜 먹었을 거고,
얼굴도 한두번 마주쳤을 거다.

여긴 그냥 동네 마실 다니는 정도밖에 안된다는 투로 말씀하시던데
등산화를 보니.. 아.. 아이젠이 없다! ^^;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 정도 눈은 눈도 아니라고 ^^;;;;;






정상에서 이곳저곳 둘러보니
가 보지 못한쪽에도 멋진 풍경이 잔뜩 있었다.

아무도 없이 저곳을 혼자 걷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깜짝 놀란 것은 이곳에서 동해바다가 보인다는 것.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바다가 보여서 살짝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
그리고.. 강릉 시내가 참.. 작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쉬움에 동영상 하나 더....







슬슬 하산 준비를 하러 가야 할 시간.

이런 풍경을 뒤로하고 떠나야 하다니...






영화에서나 보던 그런 풍경이네요!!! 라며 즐거워하던 직장동료.

뒷모습만 봐도 기쁨이 베어 나오는 듯 ㅎㅎ






떠나기 아쉬워서 비슷비슷한 사진이지만 자꾸 카메라에 담게 된다.







선자령 정상 구경을 마치고,  아늑한 우리의 보금자리로 돌아와서...

텐트 접기 전 기념사진 한컷.






ㅎㅎㅎ

어젯밤 강풍 속에 텐트를 치는데... 아.. 씨ㅂ...  팩을 안 가지고 왔네!!! -_-

그 황당한 상황에서 같이 간 일행이 기지를 발휘해서 무사히 하룻밤을 지낼 수 있었던...
스테인리스 젓가락 팩 !! ㅋㅋ

어제 텐트 칠 때, 팩이 없어도 뭐.. 짐좀 넣고, 돌덩이 몇개 넣어두면 그런대로 괜찮지 않겠어? 라고 생각했던 순간
바람에 짐과 텐트채로 떠밀려가는걸 보고 기겁 ㅋㅋ
스테인리스 젓가락이라도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어제와는 다른 코스로 하산.

경치가 기가 막히다.

비록 바람이 더럽게 강한 곳이라
눈꽃 따위는 전혀 없지만.. 그래도 충분히 아름답다.







길게 드리워진 나무 그림자 또한 그림같고...







종종 만나는 흡사 그랜드캐년을 닮은 바람에 깎인 눈덩이.

색깔만 붉으면 영락없이 그랜드캐년이다.







하산 코스 중 나타난 '동해 전망대'

선자령 정상에서 보는 것보다 동해가 훨씬 잘 보인다.






경치 구경하기 전 떡이 되어 쓰러져가는 몸뚱아리 좀 쉬고....







딱 반 온 모양.






저 아래로 동해바다와 강릉시가 한눈에 보인다.






강릉시 전경이 한눈에..

우측 끝에 공항이 보인다.
강릉시가...그래도 공항도 있으니 어느 정도 규모가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보니 참.. 생각보다 참 작다.






장난감처럼 보이는 영동고속도로.







저 건너편 산에 보이는 용평리조트.

스키장 안간지도 몇 년 되었는데... 문득 한번 가보고 싶다.








전망대 앞에 저게 왠... PRI교장?! ㅋ

정말 생긴게 딱 치 떨리는 그 PRI교장처럼 생겼다.

사실 PRI교장은 아니고, vorTAC 이던가? 항공기 무선 항행 시스템 시설이다... 인듯.. 인걸까? ^^;;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저 멀리 풍력발전기가 보이고, 언제 다시 가 볼 수 있을런지....







아.. 포장도로!

원래 이곳 선자령을 오게 된 계기가...
다른 사람이 다녀온 후기를 보니 시작부터 선자령 정상까지 이런 길로만 가는듯하게 포스팅을 해 놓아서
이런 포장도로에 이정도 경사라면 정말 쉽게 가겠다.. 싶어서 선자령을 온 것이었는데...
알고 보니 시작 지점 1/5 정도만 이런 임도가 있고, 나머지는 그냥 산길이더라는...

완전 낚였음 ㅋ





아이젠 차고 포장도로 걷기 불편해서, 약간 지름길로...

이제 곧 끝이 보이는구나...






등산로를 내려오니 이곳이 등산로 입구였다.

그러니까.. 이곳 순환등산로를 거꾸로 걸어온 셈이다.

무슨 선견지명인지는 몰라도 순환등산로를 거꾸로 걸어온 덕에
몸이 날아갈듯한 강풍도 피해서 올라가고 (어제 동해전망대쪽은 걷기 힘들 정도였다고..),
내려오는 길엔 바람 없는 좋은 날씨 속에 동해전망대도 구경하고...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드디어 끝!

저~앞에 대관령 휴게소가 목적지.







엄청 많은 차량이 주차장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관광버스도 수십대에...
어쩐지 하산하는데 사람들이 끊임없이 올라간다 싶더라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온것이었다.
이곳 선자령,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인가 보다.


내 평생 첫겨울 눈 덮인 산에서의 비박.

신선하고도, 독특한 경험을 한 아름 안고 간다.




PS.

이틀 동안의 기록.

올라갈 때...




내려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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