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이어서...그냥.
구름을 타고 피리를 부는...
여유가 느껴지는군...
반가사유상(金銅 半跏思惟像)
삼국 6세기 후반.
왼쪽 다리 위에 오른쪽 다리를 올려놓고 고개 숙인 얼굴의 뺨에 오른쪽 손가락을 살짝 대어 명상에 잠긴 모습의 반가사유상이다. 머리에 인동무늬가 있는 높은 보관을 쓰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전체적으로 매우 가늘게 표현된 상체에는 옷을 걸치지 않았고 하체에는 치마를 걸쳤는데, 치마자락이 대좌를 덮고 있다. 오른쪽 다리 밑과 왼쪽 다리에 커다란 U자형의 옷주름을 만들고 있고, 이 주름들 사이에 가는 선으로 다시 옷주름을 조각하여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옷주름은 당시 중국 불상의 옷주름과도 비슷하다. 머리 뒤쪽에 꽂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머리에서 발하는 빛을 달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것 말고 특별히 따로 공간을 마련한 근사한 반가사유상이 있었으나...
'사진촬영 금지' 라는 푯말이 있어서 눈으로만 감상했었다.
시키는 대로 잘하는 던킨 ^^;;
몇몇가지 외엔 삼각대,플래쉬를 사용하지 않으면 사진촬영이 허용 되는데
그 와중에 플래쉬 펑펑 터트리며 사진찍어대는 개념없는 사람들이 곧 잘 눈에 띄이더라는 -_-;;;;
아마 좀 안가서 전면 사진 촬영 금지가 될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개념 이기적인 몇몇 씹쉐리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발생.
이런 경우 너무 많이 봐 와서 짜증이 난다 -_-
반가사유상들 앞에는 조그마한 거울이 놓여져 있는데
고개 숙이고 있는 불상들의 표정을 보라고 앞에 놓아 둔듯...
허나 -_-;; 각도가 안맞아서 제대로 얼굴이 보이는 거울은 없었다.
무슨 장식인듯.... ^^;;;
귀..귀여워서.
사리함 인듯..
세월의 흔적이 엄청나지만 상당히 정교.
폼난다.
잘 보면 가운데 자그마한 병사가 지키고 있는 이것과..
매우 섬새한 이것은.... 역시나 국보다...
감은사 동탑 사리갖춤(感恩寺 東塔 舍利具)
통일신라 682년경. 보물 1359호.
감은사(感恩寺)는 삼국통일을 이룩한 문무왕(文武王)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신문왕(神文王) 2년(682)에 창건된 절로 현재 동·서탑과 건물터만이 남아 있다. 이 사리기는 1996년 동탑의 해체 복원 중 삼층 탑신 윗면에 마련된 장방형 구멍에서 발견되었다. 사리갖춤에는 금동 방형 외함 안에 집 모양 사리기를 넣었고, 이 사리기 기단 위의 화염보주 항아리 안에 연화좌를 마련하고 수정사리병을 안치하였으며 그 위에 보개(寶蓋)형의 지붕이 있는데 매우 섬세하고 화려하다. 사리 외함의 경우, 깊숙한 상자에 방추형의 뚜껑이 있는데 외함의 네 면에는 사천왕상 1구씩 배치되었다. 이에 앞서 1959년 이루어진 서탑 해체 복원시 삼층탑신 윗면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이라고 한다....
근사하다는...
그림에 은실을 박아 넣은 멋지구리구리한 도자기.
어떤식으로 은실을 박아넣었는지 설명된 그림도 있고.. 그러더라는....
진짜 손이 많이 가게 생긴.. ^^:;;;
누군지 만든사람이 참 대단.
30cm 정도 되는 자그마한 탑인데
사리늘 넣어서 큰 탑의 사리함에 이 작은 탑을 넣어두는 그런 형식이라고 얼핏 설명을 읽은 기억이 있음.
맞는지는 모름 ^^;;;;
만화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공작왕' 같은 만화에서 한번쯤 보았을법한 무기 ^^;
실제 공격용 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큰듯.
국보란다...
청자 칠보무늬 향로(靑磁 透刻 七寶文 香爐)
12세기 국보 95호
이 향로는 고려 청자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해외 전시에서도 사랑받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재 가운데 하나이다.
향로의 구조는 향이 빠져나가는 뚜껑과 향을 태우는 몸체, 그리고 이를 지탱하는 받침으로 이루어진다. 뚜껑은 한 가운데 구멍이 있어 연기가 빠져나가도록 하였으며 이 위에 칠보무늬가 투각된 둥근 손잡이를 붙여 연기가 넓게 분산되도록 하였다. 이 향로는 서로 다른 모양을 기능적으로 결합하여 하나의 완성된 조형물로 나타내었을 뿐만 아니라 음각·양각·투각·퇴화·상감·첩화 등 다양한 기법이 결합된 걸작이라 하겠다
이 외에도 청자 백자 등등
국보급 도자기들이 잔뜩 있었지만...
도자기는 왠지 큰 관심이 안가서 skip~
불상들 도자기 구경하며 지나가다 보니
아시아관 이라는 곳이 나오더군.
국립 중앙 박물관에는 우리나라 유물만 있는게 아니더라는...
음....
어찌보면 우리도 남의 나라 유물들 상당수 약탈 해온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러네 ^^;;;
부처(佛像)
술라웨시 시큰뎅 출토, 청동, 5~6세기
높이 75 cm, 폭 42cm, 두께 18cm
이 부처는 지방에서 제작된 것이 아니라, 중앙에서 제작되어 배로 옮겨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존격은 어부들의 수호신격인 연등불로 여겨진다. 오른 손은 현재 파손되었으나, 그 위치로 볼 때 시무외인을 결하고 있었을 것이다. 남인도 아마라바티에서 기원후 2세기부터 매우 유행했던 양식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이 양식은 오랜 기간 지속되어 5세기까지도 이런 양식의 불상이 많이 제작되었다. 이 상은 기원 후 5-6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무시무시한 여신이구려 -_-;;;
힌두교의 어떤 신 인가?
정확히 설명을 보지 않고 와서 누군지는 모르겠다는...
용도는 모르겠으나..
마치 요즘의 만화 케릭터 처럼 귀엽게 생겨서 ^^;;;
( 사실 무시무시한 놈이거나... 제수용품 같은걸수도 있지만... ^^;;; )
가네사 석조신상
가네샤는 힌두교의 여러 신들 중에 하나로 지혜와 배움 그리고 행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가네샤는 힌두교의 주요 삼신 중 하나인 쉬바와 그의 부인 빠르바띠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전설에 의하면 빠르바띠가 어느 날 목욕을 하기 위해 아들 가네샤에게 밖을 지키라고 했다. 가네샤는 그의 아버지조차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쉬바는 가네샤의 행동에 화가 나서 목을 베어버렸는데 빠르바띠가 슬픔에 잠기자 쉬바신이 다시 아들의 몸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없어져 버린 아들의 머리 대신에 자기 옆을 맨 처음 지나가던 코끼리의 머리를 떼어서 붙였다. 오늘날 힌두교인들은 가네샤가 장애물을 제거하고 지혜를 알려준다고 믿기 때문에 사업을 시작할 때나 사업의 번창을 기원할 때면 가네샤 상을 찾곤 한다힌두교 신화집 같은건 좀처럼 볼수가 없어서 대중화 되지 못했을 뿐이지
가만히 보면 힌두교의 신화도 그리스 로마 신화 못지 않게 이런저런 재미난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는듯 하다.
언제 한번 기회되면 책으로 한번 읽어 보리라....
가루다
가루다(Garuda)란, 힌두교 신(神)의 하나. 조류의 왕으로 불리는 전설상의 큰 새이다. 가루라(迦樓羅)로 음역하며 금시조(金翅鳥)·묘시조(妙翅鳥)라고도 한다. 《리그베다》에 나오는 수파르나신화가 가루다전설의 기원으로 여겨진다. 가루다는 용(龍)의 노예가 된 어미새 비나타를 구하기 위하여 불사(不死)의 음료인 암리타(amrita;甘露)를 신들에게서 빼앗아 용(龍)에게 갖다 바친다. 그러나 뒤에 인드라신과 밀약을 맺고 암리타를 용에게서 되찾아 오는 한편 그 이후로 용(龍)을 상식(常食)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비슈누신과 주종관계를 맺고 비슈누를 태우고 다녔다고 한다. 대승경전 등에 천룡팔부중(天龍八部衆)의 하나로 자주 인용된다. 밀교에서는 대범천(大梵天)·대자재천(大自在天) 등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새로 화현(化現)한 것이라 하고 문수보살의 화신이라고도 한다
허걱...
용을 주식으로 먹는 새 ^^;;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