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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4... 송악산, 수월봉 일몰!

다녀온곳(국내)

by dunkin 2006. 9. 14.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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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이어서...




해안도로를 따라 신나게 달려서 송악산 도착.




뭐.. 대장금 촬영지라고 팻말도 붙어있고..

저 이래 일본군이 파 놓은 동굴도 있고... 그렇던데...

그냥 여기서 내려다 보는 풍경이 좋아서 이곳에서만 감상.










캬~

분위기 좋코~

그림 좋코~~~











허나.. 꽤나 거친 바람이 불어오던 바닷가....












장난기 발동 -_-;;












훗~

연이 되어 날아가볼까.. 하는 심산으로 ㅋ





사실 이롯 송악산 일대는 이렇게 장난치고 놀기에는 그다지 썩 어울리는 곳이 아니더라는... 

알고보니 가슴아픈 역사의 현장이더군. -_-








가슴을 옥죈 송악산의 슬픈 역사
[길 위에서 쓰는 편지 14] 모슬포에서 송악산까지
   이명주(sindar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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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악산에서 바라보이는 산방산
ⓒ 이명주

▲ 드라마 <대장금> 촬영지라는 안내판이 눈에 띈다.
ⓒ 이명주

아침 기록

지난밤부터 제주가 태풍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 든다는 일기예보와 함께 줄곧 비가 내리고 있다. 그렇다고 궂은 날씨를 핑계 삼아 한 곳에 계속 머무를 수는 없다. 이미 용두암에서 계획보다 하루를 더 머물렀고, 제주를 떠나는 배편이 11일 예약됐기 때문이다.

아침밥을 먹었으니 곧 나설 채비를 해야겠다. 오늘부터는 단지 볼거리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장소를 돌아볼 작정이다. 사람이고 장소고, 서러운 기억을 살피는 것이 중요한 일이란 생각에서다. 그 첫 번째 장소로 송악산을 택했다.

'태풍이 나를 피해 다니는군!'

여행 '운'이라는 것이 별 게 아니다. 어차피 낯선 길에서의 고생을 감수하고 떠나온 것이니, 어디든 걸을 수 없을 만큼의 천재지변만 아니면 여행의 반은 성공한 셈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길과 길을 걷는 자 사이의 소통의 문제다.

이틀 동안 머물렀던 용두암 해변을 벗어나 버스를 타기 위해 큰길로 나갔다. 그때 태풍소식을 듣고도 길을 나선 내게 본때를 보이려는 듯 비가 거세게 퍼붓기 시작했다. 횡단보도에서 나란히 비를 맞게 된 아저씨 한 분이 기본요금밖에 안 나오니 택시를 타는 게 나을 거라 하셨다.

5분 여 만에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모슬포행 티켓을 끊었다. 모슬포에서 다시 송악산 가는 버스를 타야했다.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한 시간 여를 달려 모슬포에 도착하니 어느새 비는 그치고 살갗이 따끔거릴 정도의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굳이 태풍이 아니더라도 날씨가 변덕스럽기로 유명한 제주에서 이 정도면 운이 좋은 게 틀림없다. 한라산 등반 내내 흩뿌리던 비가 백록담에 이르러서는 거짓말처럼 멈추었고, 온종일 제주시를 관광할 때도 일기예보와는 달리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었으니 말이다.

'태풍이 나를 피해 다니는군!' 하고 생각하니 괜스레 우쭐해졌다. 도착한 시각이 점심때고 보니 여행오기 전, 부산 연안부두에서 어머니와 함께 먹었던 짬뽕이 먹고 싶어졌다. 정류장에서 벗어나 현금인출을 하고, 송악산행 버스가 서는 곳을 확인한 뒤 사거리 모퉁이에 있는 중국음식점에 들어갔다. 가게 이름이 '짜장면집'이었으니 이보다 더 정직할 순 없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이열치열이라고 더운 날씨에 더운 선풍기 바람을 쐬며 뜨거운 짬뽕 국물을 마시니 오히려 시원함이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 정류장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모슬포 주민인 듯한 할아버지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며 버스를 기다렸다.

송악산의 슬픈 역사를 아세요?

▲ 송악산 해안절벽의 인조동굴. 일본군이 만든 비행장의 일부다.
ⓒ 이명주

▲ 동굴 내부
ⓒ 이명주

버스 기사가 송악산 입구라며 졸고 있는 나를 깨워주었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은 시각, 햇살은 한창 뜨겁고 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었다. 좌측으로는 마라도로 가는 배 선착장이 보이고 정면으로 송악산이 멀지 않았다.

전날 인터넷으로 확인했던 송악산의 해안절벽으로 내려갔다. 그 초입에 드라마 <대장금> 촬영지였음을 알리는 안내 간판이 서 있었다. 장금이로 열연했던 배우 이영애씨가 웃는 얼굴로 관광객을 맞이했다. 수평선 위로 산방산과 형제섬이 보이고 시야를 가득 채운 바다의 풍광이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사전 지식 없이 이곳에 들렀다면 드라마에서 봤을 법한 장소를 찾는 게 고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지난날 슬픈 우리 역사의 흔적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안내 간판을 지나 해안절벽 쪽으로 걸어가니 수천 겹의 퇴적층으로 이루어진 송악산 몸 아래에 1m 간격으로 10여 개의 구멍이 뚫려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그 구멍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동굴들의 입구였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굴 내부에 들어서니 몇 걸음 못 가 몸에 섬뜩함이 배였다.

이 동굴의 정체는 2차 대전 당시 '결7호작전'이란 작전명 아래 일본군이 연합군의 공격을 대비해 인위적으로 뚫은 비행장 시설의 일부였다. 당시 7만여 명의 일본군 정예병력은 제주에 머무르면서 제주 도민들을 강제노역에 가담시켜 여러 개의 해안기지와 비행장, 도로를 건설했다.

총 15개에 이르는 동굴은 군용차량과 대량무기를 저장할 수 있을 만한 크기이며 전체 길이가 1, 2㎞에 이르는 미로형부터 폭과 넓이가 2∼3m 정도인 소형동굴까지 그 형태도 다양하다.

제주도를 중국 침략을 위한 전진기지로, 본토 사수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 삼은 일본군은 연합군이 제주도까지 세력을 뻗칠 시 이 곳을 불바다로 만들 작정이었다. 원폭투하로 인한 일본군의 조기 투항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제주도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남의 땅에 들어와 그 백성들을 짓밟은 것도 모자라 그 백성이 주인인 땅을 화약고로 삼은 과거 일본의 행각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동굴을 둘러보고 다시 바다 앞에 서니 풍경도, 바람도, 파도소리도 서글펐다. 자갈밭 어디에 그 시절 서럽게 죽어간 우리 백성의 피가 고여 있는 건 아닌지…….

제주방문의 해를 맞은 탓인지 어딜 가나 외국인 관광객을 만날 수 있었다. 송악산에서 역시 예외가 아니었는데 그들은 <대장금> 촬영지 안내간판을 유심히 읽으며 일행과 웃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무심히 송악산을 둘러보고 돌아갈 터였다.

소통이 가능했다면 '이 곳은 일본군이 전쟁을 빌미로 훼손시킨 아픈 역사의 현장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살아있는 화산폭발의 흔적

▲ 송악산에서 바라보는 형제섬
ⓒ 이명주

▲ 송악산 주봉의 분화구 흔적
ⓒ 이명주

이미 각오한 것이었으나 추스르기 어려울 정도로 마음이 씁쓸했다. 과거에 대한 울분과 내 무기력함에 대한 부끄러움이 가슴을 옥죄었다. 그렇다고 장소를 벗어나 도망칠 일은 분명 아니었다.

기분을 전환할 겸 해발 104m인 송악산 주봉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이제껏 천m가 훌쩍 넘는 산들을 넘어왔으니 이쯤이야 '누워서 떡먹기'다 싶었다. 그러나 송악산은 작은 키에 기죽지 않으려는 듯 바다의 힘을 빌려 엄청난 강풍을 대동하고 있었다.

결코 연약하지 않은 체구에 큰 배낭까지 짊어졌음에도 몸이 휘청거렸다. 꽉 조인 모자는 훌렁 벗겨져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그 위력이 마치 부당한 역사에 항거한 제주도민의 투지와 닮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껏 몸을 움츠려 한 발 한 발 내딛다보니 이름 모를 가시덤불 사이로 검붉은 돌과 흙이 보였다. 화산폭발 당시의 흔적이었다. 바람을 뚫고 주봉에 이르니 둘레 500m, 깊이 80m 정도의 분화구가 나타났다. 침식이 상당히 진행된 데다 그 위로 풀꽃이 무성히 자라 멀리서 보면 산의 일부인 것 같지만 그 앞에 서면 거대한 원형의 땅이 푹 꺼져있어 분화구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거의 엎드리다시피 하여 분화구를 다 둘러본 뒤 좌측 오르막길 끝에 있는 송악산전망대로 향했다. 해안의 절경으로 유명한 송악산 중에서도 멀리 마라도와 가파도, 형제섬과 산방산까지 보이는 으뜸 자리였다. 한때는 화산재와 용암으로 범벅되었을 이곳이 몇 만 년이 지나 관광명소로 탈바꿈되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사라진다고 해서 존재하는 것이 부질없는 것인가?'

송악산 구경을 마치고 처음 버스에서 내린 장소로 돌아왔다. 바다 바람에 옷도, 머리카락도 끈적거리고 강풍과 맞서느라 몸이 녹초가 되었다. 그런데 다음 버스 시간까지 2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행인의 말에 산방산까지 걷기로 했다.

차도 뜸한 한적한 거리를 걷다보니 문득 '내가 걷는 이 길을, 또 어떤 사람이 걸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뒤이어 '나 역시 머지않은 날에 이 길뿐 아니라, 그 어떤 길에서도 보이지 않겠지.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 역시……'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홀로 길을 걸을 때면 인간의 삶이 유한함을 실감하곤 한다. 그 덧없음이 서글퍼 길가에 주저앉아 울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서글픔을 넘어 자연의 섭리를 생각하면 또 가끔은 받아들일 용기가 생기기도 한다.

햇빛 찬란한 해변도로 한 가운데서 나는 내 그림자를 보며 생각했다.

'사라진다고 해서 존재하는 것이 부질없는 것인가?' (7월 9일 PM 4시 생각)

▲ 전망대에서 바라본 송악산 해안절벽
ⓒ 이명주

▲ '사라진다고 해서 존재하는 것이 부질없는 것인가?'
ⓒ 이명주
 2006-08-03 13:06
ⓒ 2006 OhmyNews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50403

출처는 오마이 뉴스....



뭐.. 이런 사연이 있는 곳 이라고 하더라는.....









차로 갈 수 있는곳 까지 최대한 송악산 위에 올라가서 내려다 보니 저 멀리 삼방산도 보이는... 멋진 경치가 펼쳐진다.










자~ 다음 목적지는 일몰이 끝나게 멋지다는... 수월봉으로~

제주에 특화된 제주전용 네비게이션을 콕콕 찍으며 길을 찾아서....










오오오 ~~

아직 20여분쯤 더 달려가야 하는 상황에서 이미 멋진 일몰이 펼쳐지기 시작!! ㅠㅜ

아~아~~~ 똥마려운 강아지 마냥 마음이 조낸 바빠지기 시작하는 순간 ㅋㅋ












해안가를 따라 신나게 달려가며 점점 저물어가는 해를 보니

안타까움에 어쩔줄을 모르겠더라는 -_-

빨리 수월봉에 당도하여 근사한 일몰을 보겠다는 신념으로 무작정 밟아댔다.


허나.. 이 빌어먹을 제주도의 규정속도는 ... 잘해봐야 60Km/h

왠만한 길은 50Km/h!!!!!

게다가 곳곳에 과속 카메라!!

주택가도 아닌 한적한 시골 4차선 국도가 50Km/h라니 !!!

젠장 !!!!













거의 다 도착 해가는 상황.

야속한 해는 조금도 기다려 주지 않고 차츰 차츰 저물어가는구려 ㅠㅜ





어찌됐건 극적으로 in time!!

SAFE~!!





후다다닥 전망대를 올라가니....






우와~~ 소리가 절로 나온다!

조금만 더 일찍왔더라면 좋았겠지만

지금 이대로도 너무나도 근사한 노을이 아니던가 !!!

시간안에 온것에 스스로에게 감사 ㅋ










손을 뻩어 만져보고 싶은... 불타오르는 하늘 색...

앗 뜨~











주욱~ 당겨서 저 멀리의 하늘도 한컷...











옆을 돌아보니.. 왠 사람 얼굴을 한 형상이... ^^












근사한 하늘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한컷!

노을을 살리자니 필 플래쉬 없이는 사람 형상만 ... ㅋ 

뭐... 내 얼굴이 중요한게 아니니.. 깜둥이로 나와도 좋다 ㅋ












고개슬 좌특으로 40도... 위로 40도 정도 돌리니...

우왓! 우왓! ~!!

한폭의 그림같은 구름이~!!











구름 사이로 잠시 숨었던 태양이.. 이제 곧 모습을 들어낼듯!!

저 뻩어나오는 빛을 보라~ 

감탄 연발이다.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고... 비슷비슷한 시간대의 일몰사진일터.

하지만 해가 수평선 아래로 사라질때까지 계속 셔터를 눌러댈 수 밖에 없을만큼 아름답더라는...











빼꼼~ 얼굴을 내미는 태양.

이제부터가 하일라이트 일까?

수평선과 태양과의 거리는 불과 손톱만큼!

저물어 가는 속도만큼 아쉬움도 점점 늘어나는 순간....











살짝 걸친 태양.. 구름의 실루엣.. ..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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