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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탄,싱가폴 8Day (공해 일출,귀국) [31/31]

다녀온곳(국외)

by dunkin 2005. 10. 4.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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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이어서...




뱅기를 타고 기내식 꾸역꾸역 다 먹고

담요 4개나 덮고 자다가

새벽에 잠깐 잠이 깼다.

아무래도 이 비좁을 비행기에서 잠자는게 참으로 불편하다.

비지니스 클래스라면 얼마나 좋을까 ㅠㅠ


암튼..


시간을 보니... 대충 해가 뜰것도 같은 시간.

창 밖을 보니.. 저~기 동쪽 하늘이 푸르스름 해 지는것이 곧 해가 뜰 모양이다.



오오~ 이게 왠 보기 힘든 광경!!!

비행기에서 일출을 보게 되다니!!

잽싸게 카메라 챙겨들고 일출사진을 찍었다...







이제 곧 해가 뜰 모양.

크~~

저 멀리 하늘의 그라데이션 진 색깔이 눈물이 날 정도로 근사하다.










저~ 멀리 구름 한점의 아래가 해를 받아 밝게 빛나고...

이제 눈 깜짝 할 사이에 해가 뜰 모양...










빼꼼~ 하고 해가 솟는다 !!

새해가 밝은것도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소원을 빌었다.

' %%^&$%^$@^@#$%'>%%^&$%^$@^@#$%@# 해주세요 !!! '




































우우웃!! 눈부셔~

너무나도 화려했던 일출.

처음으로 경험한 이 높은 구름위 비행기 안에서의 일출.

정말 장관이었다.

다시 경험하기도 쉽지않을 듯.




...


이로서 이번 빈탄 , 싱가폴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냈던 며칠과... 잠시도 쉬지않고 걸어다녔던 며칠.
그 상반된 일정을 둘다 멋지게 소화하고 즐겁게 지낸 7박 8일간의 일정들...

1,400여장으 사진으로 그 기록들이 남겨져 있지만
그보다도 더 값진것은 내 머리속에 내 가슴속에 남겨진 진한 추억!

항상 돌아오는 길은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금 일상으로....





끝!!





...



마지막으로 아쉬워서...

이 싱가폴이란 나라에 대해...


싱가포르
이은화, 이권렬


1.싱가폴의 역사

싱가폴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옛날 수마트라 스리 바자야 궁전의 왕자인 산 니라우타마가 이 섬에 건너와 마을을 건설하는 중에 기묘한 동물을 발견하고, 그것이 라이온이란 것을 알게 된 왕자가 이곳을 '싱가폴'이라고 이름지은 것에서 유래한다. 이것이 싱가폴의 어원이 되었다.
 19세기에 들어설 때까지는 작은 어촌에 지나지 않던 싱가폴이 또다시 역사에 등장한 것은 1819년이다.
영국인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즈가 싱가폴 강 하구에 상륙하여 개발에 착수한 해이다. 그리고 1824년에는 동인도 회사를 설립해 동서의 중계무역자로서 급속히 발전함으로써, 국제항의 기반이 이루어졌다.
그후 1832년에는 영국의 해협 식민지 중심이 되고, 1870년 대의 수에즈 운하 개통과 함께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 2월 15일부터 3년 8개월 동안은 일본군에 점령되어 '소남시'라고 개명되었다. 싱가폴 함락 때 일어난 '싱가폴 학살'사건은 그 희생자가 3만명이나 되며, 일본과 싱가폴의 우호관계에 큰 오점이 되고 있다.
전쟁 후에는 다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1957년에는 말레이지아 연방으로 독립했다.
1959년에는 리 쾅 유씨를 초대 수상으로 한 말레이지아 자치주의 지위를 얻었다. 그 일은 140년에 걸친 영국 지배에서 탈출한 것이다.
1965년에는 말레이지아 연방의 말레이지아인 우대정책과 리 쾅 유씨를 당수로 하는 인민행동당의 인종간 평등주의와 사이에서 심각하게 대립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말레이지아 연방의 라만 정권은 싱가폴 분리를 결정했다.
같은 해 8월 9일, 싱가폴은 말레이지아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여 대통령을 원수로 하는 완전한 독립주권 국가가 되었다.
독립 후에는 리수상의 지도 아래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현재는 아시아의 신흥경제 국가로 부상하여 주목되고 있다.
 

2.싱가폴이 1965년 말레이지아로부터 분리 독립된 후 불과 15년의 짧은 기간 동안 이룩한 경제 성장의 비결은?

1)작은 나라의 거물 지도자 '리 쾅 유'
말레이지아로부터 분리 독립한 후 불과 15년 사이에 이룩한 기적적인 싱가폴의 번영은 결코 우연이나 행운의 산물은 아니다.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않고 청렴결백하며 헌신적인 지도자와 근면한 국민들이 해 낸 '협동사업'이다. 그 중에서도 무자원국 싱가폴을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을 앞질러 경제 성장을 이룩하게 한 인물로 리 쾅유수상을 꼽을 수 있다.
'리' 수상은 싱가폴을 번영의 길로 인도할 수 있었던 6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①명확한 시그널을 주어라. 국민을 혼란시켜서는 안된다.
②시종일관하라. 자주 방침을 바꾸어서는 안된다.
③청렴결백하라. 뇌물은 배제한다.
④존경은 얻되 인기에 급급하지 말라. 연약한 선택은 거부한다.
⑤이익을 분배하라. 국민으로부터의 것은 되돌려 주어야 한다.
⑥성공을 위해 노력하라. 역사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실패한 것은 인정해 줄 것이다.

2)조화를 이룬 복합 민족 사회
싱가폴은 '화교의 나라'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이 나라를 찾았을 경우, 현실과의 거리감에 놀라게 되고 각 인종이 훌륭한 조화를 이루어 가며 국가 형성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 감회마저 느끼게 된다. 싱가폴은 분명히 복수의 이민족이 공존하고 있는 '복합민족국가'임에 틀림이 없다.
싱가폴은 인구 구성비는 중국계가 77%, 말레계가 15%, 인도계 7%, 기타로 중국계가 숫자상으로 인구의 4분의 3 이상을 차지하고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리 쾅유는 싱가폴이 '제 3의 중국'이 아님을 공포하고 국내에서는 민족융화의 달성이라는 목표를 향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노력의 방편으로 민족 공용어로서 영어를 중시해, 각 민족의 민족어 이외에 영어를 마스터하게한 {두언어} 정책을 폈다. 또 소수파인 말레인을 우대해 교육과 경제 부분에서 뒤떨어진 말레인의 수준향상에 노력했다. 그리고, 중국색을 제거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폭죽 추방을 시행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싱가폴 국민'이라는 주체정신의 사상을 갖게 하였다.

3)적도의 고층 [뉴 타운]들
싱가폴의 이름을 세계로 알린 것은 급피치로 진전한 도시재개발사업과 운집된 고층아파트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싱가폴 사람중 열 사람에 일곱은 단지가족이다. 시 남쪽 항구에 가까운 훼바 산 언덕에 올라 둘러보면 사방에 20층, 30층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는 뉴타운이 펼쳐져 있다. 하루 평균 50척이 넘는 배가 드나드는 세계 제 3위의 싱가폴 항구 쟈딘스텟푸스 맞은편에서 센토사 관광섬이 보이는데, 여기서 관광선을 타고 바다 위에서 되돌아 보면 상업구 센톤웨에 운집되어 있는 OCBC빌딩(52층), DBS빌딩(48층), CPF빌딩(45층) 등 고층빌딩이 눈앞에 전개된다.
동남아시아의 한구석, 적도 바로 아래에 출현된 국제도시 싱가폴의 모습이다.

4)정권을 뒷받침해 주는 풀뿌리 조직
리 쾅유의 장기정권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정부와 인민 행동당이 풀뿌리조직 레벨로부터 국민의 소리를 직접 받아 올리는 노력을 하였고 또 이것을 정책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정부에서 조직한 시민평의위원회나 커뮤니티 센터의 운영위원 등의 주민 조직을 통해 국민과 정부가 직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풀뿌리 레벨의 조직을 살펴보면, 1963년 2월 싱가폴이 말레이지아 연방에 가맹되고 나서 치러진 총선거 후 '리' 수상은 선거구를 방문하고 정부는 각 선거구에다 '풀뿌리위원회'를 설립하고 싶다는 의향을 표명했다. 선거구 유세 때, '리' 수상을 맞이한 주민들은 제각기 도로, 버스정류장, 학교 등의 시설이 나쁘다고 호소하였다. 주민들은 이러한 불평불만을 감독관청에 호소하지 않고, '리'수상에게 [직소]의 형식을 취한 것이다. 그래서 '리'수상은 주민의 소리를 받아들여 용공세력에 대항키 위해 항구적인 [풀뿌리 레벨]의 조직결성을 결의하고 1965년 최초로 시민평의위원회(CCC)가 설립되었다. 시민평의회는 도시국가 싱가폴의 동단위의 의회라고 할 수 있다. 구성인은 태반이 중소기업 경영자, 상인, 점포주이고 다음이 회사, 관공서의 사무원이다.

5)고도성장의 견인차 국영기업
싱가폴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중계무역에 의존한 경제구조에서 탈피하고 공업화에 성공한 점이다. 공업화의 성공으로 중계무역형 경제의 전형적인 국민총생산의 불안정성은 해소되었다. 싱가폴 정부가 공업화 정책 추진을 이해 눈길을 돌린 것이 바로 외국자본의 도입이었다.
싱가폴 국영기업에는 ①정부기관의 활동 확대 ②공공기관의 확대 발전 ③영국군 기지로부터 발전④국방부의 직접지배기업 ⑤공인도박공사 ⑥오락ㆍ관광업의 진흥 ⑦신규산업의 육성 등 7가지 케이스를 들 수 있다.
싱가폴 국영기업은 다른 나라들의 국영기업과 같이 정부 의존이 아니고 외국기업 혹은 동업의 국내기업과 경합하고, 경영에 실패하면 도산, 해고는 상식적이라는 비지니스의 원칙에 철저하다. 이들 국영기업의 업적은 전반적으로 호황이였다.

6)새로운 노동운동의 창조
싱가폴은 파업이 없고 노사관계가 안정된 나라라는 평가가 내려져 있다. 외국자본이 이 나라에 진출하는 동기로는 지리적 조건과 질이 좋고 비교적 저렴한 노동력이 확보된다는 이유 외에 안정된 노사관계를 들 수 있다.
리 쾅유가 정권을 획득할 당시, 노동조합의 세력이 강해 파업은 다반사였다. 전투적인 노동조합을 [노사협조]의 노동조합으로 체질을 개선해 국가건설에 일익을 담당하는 데 성공했다.

7)동양의 이스라엘
서울 정도의 크기의 면적을 가진 미니국가 싱가폴은 제 2차세계대전 이후 일본군의 싱가폴 점령, 말라야 공산당의 무장투쟁, 말레이지아 연방과의 대결정책 등 침략, 파괴활동, 긴장격화의 역사적인 체험을 통해 1967년 징병제를 채택한 이 후 국군의 충실과 국방력 강화에 힘써 왔다.
흔히들, 싱가폴을 바다 속의 [독을 가진 작은 새우]로 비유한다. 바다 속에는 크고 작은 갖가지 고기가 살고 있으며 [작은 새우]인 싱가폴은 큰 고기에게는 한 입으로 삼켜질 수 있는 무력한 존재이나 작은 고기나 중 정도의 고기가 먹으려고 덤빈다면 독을 내서 저항한다는 뜻이다.
싱가폴은 잠재적으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지아라는 두 개의 말레계 이슬람국가에게 위협을 느끼고 있고 국방의 모델을 자신들과 상황이 비슷한 이스라엘로 삼았다. 따라서 싱가폴을 [동양의 이스라엘]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8)철저한 현실주의 외교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싱가폴의 위치를 확인해 보면 싱가폴은 말레이 반도 끝의 [점]에 지나지 않는 동남아시아의 도시국가인 동시에 이 나라가 태평양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말래카 해협 입구에 위치한 전략상의 요충지대라는 짐작이 갈 것이다. 싱가폴은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국제 정세를 주체적으로 움직일 힘은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주어진 환경을 항상 자기 나라의 건설에 유리하게 전개 되도록 현실적인 외교정책을 펼쳐 왔다.

9)싱가폴과 일본
좁은 국토에 많은 인구, 부존자원이 거의 없고 오직 공업과 무역으로 입국한 싱가폴은 탁월한 지도자 아래 온 국민이 쌓아올린 경제발전의 발자취는 패전 후의 일본을 방불케 하는 점이 있어, 혹자는 싱가폴을 동남아시아에서의 [일본의 축소]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싱가폴을 깨끗하고 푸른 국토로 가꾼다는 [클린 & 그린 캠페인]이다. 물론, 청결하게 가꾸기 위해 도로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침을 뱉거나 하면 벌금 500$를 과한다는 [법가 사상]은 싱가폴의 독자적인 것이긴 하지만 지금에 와선 본보기로 삼았던 일본보다 싱가폴의 [깨끗함]이 훨씬 유명하게 되어 버렸다.
싱가폴이 일본을 국가건설의 모델로 삼고 있는 이유는 일본이 구미 각국의 선진기술을 될 수 있는 대로 받아들여 경제발전을  해 내면서도 한편, 일본 고유의 전통문화를 잊지 않고 동양적인 도덕과 가치관을 소중하게 지켜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3.싱가폴의 사회와 문화

1)이념
①실용주의
1965년 이후 새롭게 전개된 싱가폴 공화국시대를 지배한 대표적 이념은 경제제일주의, 생존 등과 밀접하게 결합된 '실용주의'라고 볼 수 있다.
②'사회적 오염'에 대한 합의
싱가폴은 다양한 민족집단과 다양한 언어로 이루어진 대단히 복합적인 사회이면서도 종교간 또는 인종간 갈등이나 대립이 거의 존재하지 않고, 또한 그렇기에 다른 한편으로 깨끗하고 질서정연한 사회, 그리고 상대적으로 효율성이 높은 사회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회적 오염'에 대해 싱가폴 사회의 구성원들이 민족 또는 인종의 차이에 관계없이 전체적으로 일정한 합의가 이루어져있음을 말해준다 할 수 있다.
싱가폴은 같은 유교문화권인 홍콩이나 대만과 비슷하게 자유시장 자본주의체제를 갖고있으면서도 이들과는 달리 조직화된 범죄, 도박, 매춘 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싱가폴은 독특한 체제답게 지하철 내에서 먹는 것을 금지하고 있고, 껌을 씹는 것은 어느 장소에서나 일체 허용되지 않으며, 또한 공해를 배출할 수밖에 없는 자가용 승용차를 소유하는 것에 대해 대단히 무거운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등 정부는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대해 미세한 것까지도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싱가폴은 어떤면에선 세계에서 가장 평화롭고 안정되어 있으며 그리고 번영하고 있는 사회이다.

2)종교
싱가폴은 많은 나라들처럼 다양한 종교제도들에 대해 '중립적'입장을 취하는 '세속국가'이지만, '세속화된 사회'는 아니다. 싱가폴은 현재 뚜렷이 '다종교사회'로서 중국, 인도 및 말레이 세계로부터 유래한 주요한 정령신앙 전통은 물론 정전을 갖는 세계종교가 모두 존재하고 있는 일종의 '종교 백화점'이라 볼 수 있다. 싱가폴에 있는 정전을 갖는 세계종교로는 바하이교, 불교, 기독교, 힌두교, 유대교, 시이크교, 조로아스터교 등이다.
그런데, 싱가폴과 이웃인 말레이시아의 경우를 보면 양국이 모두 다종교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전자는 세속국가인 반면 후자는 이슬람교를 공식종교로 갖고 있다.
1965년 독립 이래 줄곧 세속국가였던 싱가폴에서 종교는 아주 최근까지 즉 '종교 교육'이 중등학교 교과과정에 처음으로 도입된 1982년 이전까지는 공공의 차원에서 논의된 적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 때까지 종교는 가장 긍정적으로 보아 한 개인의 고유한 세계관과 도덕적 정서같은 '사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세속국가의 이데올로기와 세속주의가 지배하는 싱가폴 사회에서 종교가 보여주는 전반적 특징은 수많은 중국인들과 인도인들 속에서 종교가 계속적으로 더욱 '의식화'된 형태로 돌아가고 있는 경향이다. 이것은 종교가 그것의 표현이 사회적인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개인적 신앙의 문제 혹은 개인적인 영역의 것 즉, 이른바 '사사화'의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사화'의 경향이 지배하는 싱가폴의 종교는 더 이상 어떤 사회적, 정치적 역할을 맡지 않는다.
싱가폴에서 '민족간 결혼'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1990년 센서스의 결과에 따르면, 540,858쌍의 기혼 부부들 중 약 17%만이 부부간에 서로 종교가 다르다. 특히 이슬람교도는 거의가 이슬람교도와 결혼을 한다.
싱가폴에서 '종교적 소속'은 종교, 성, 나이, 교육, 사회경제적 지위 및 가정에서 쓰는 언어 등과 수많은 인구학적 변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현재 싱가폴에서 전반적으로 중국인들의 전통 종교라 할 수 있는 도교는 교육수준이 떨어지는 전통 중국인들만이 주로 신봉하고 있어서 점차 쇠퇴하고 있다. 반면에, 일부 중국인들 속에서는 소승불교와 지성적 전통을 강조하는 불교 및 일본의 신종교 '니찌렌 쇼슈'가 부흥되고 있고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점점 많은 수의 중국인들이 근본주의적이며 따라서 타종교를 인정하지 않고 배타적이며 카리스마틱한 부흥운동 성격을 띠는 개신교를 받아들이고 있다. 도교가 몰락하고 있는 자리에 식민지 경험으로부터 초래된 '문화적 위기'를 강하게 경험하는 20-39세 연령집단의 중국어로 교육받은 교육수준이 높은 젊은 중국인 남성들을 중심으로 무종교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한편, 대조적으로 힌두교는 쇠락하고 있고, 이슬람교는 현상을 유지하고 있다.
싱가폴에서 기독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특이한데, 수입종교로서 말레이인을 제외한 모든 민족 공동체로부터 추종자들을 고루 불러 모으고 있고, 민족적으로 중립적이다. 1920년 이래 신자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특히, 영어로 교육받은 고학력 여성들에게서 그렇다. 이들은 대부분 고학력, 높은 수입, 명예가 높은 직업 등과 관련된 중상층 및 중류층 사람들이어서 기독교의 사회 정치적 영향력은 상당하다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싱가폴에서 기독교는 현재 점차 '지배적' 종교로 되어가고 있다.




싱가폴 탐방기

싱가폴은 도시 전체가 공원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조경정리가 잘되어 있다. 어디를 가도 녹새지대가 펼쳐지고 인공적이기는 하지만 서울처럼 회색 빛나는 도시와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울창하게 나무가 많고 공기도 맑다

평균기온 = 26.7°C
평균최고기온 = 30.8°C
평균최저기온 = 23.9°C
시원한계절 = 12월 ~ 1월
더운계절 = 5월 ~ 7월
연강우량 = 2,353 mm

싱가폴은 비가 자주 오는 편이며 12월부터 1월까지 가장 많은 비가 내리며 6월부터 8월까지 비교적 건조한 기후를 보인다.

싱가폴에서는 두가지 몬순계절을 맛볼 수 있는데 하나는 12월부터 3월까지 경험할 수 있는 비교적 축축한 동북몬순(Northeast Monsoon)이고 또하나는 6월부터 8월까지 경함할 수 있는 비교적 건조한 서남몬순(Southwest Monsoon)이다. 이 두 몬순계절 사이에 위치한 4월부터 5월, 10월부터 12월까지를 인터몬순(inter-monsoon)이라고하는데 이 인터몬순 기간동안은 변화가 심한 약한바람이 일고 지표면이 뜨거운 태양으로 인해 뜨겁게 달구어지며 이로인해 오후부터 초저녁까지 천둥을 동반한 소나기를 퍼붓게 된다. 싱가폴의 습도는 보통 60-90%정도인데 평균 습도는 84.3 %이다. 최저습도는 보통 햇볕이 강한날의 초저녁경에 나타나며 최고습도는 밤과 새벽에 나타난다. 싱가폴의 면적은 641 ㎢ (서울특별시 : 627 ㎢) 이고 한국과 1시간 시차가 있다.(예 : 한국 10시, 싱가폴 9시).[싱가폴 한인촌 사이트 인용문]


싱가폴이라는 이름은 14세기 수마트라의 왕자가 이 곳을 찾았다가 낯선 동물을 보고 병사에게 어떤 동물인지 알아보도록 했는데 그 동물을 찾을 길이 없자 그냥 사자라고 보고했다고 한다. 그래서 수마트라 왕자는 사자가 사는 곳이니 이곳을 싱가푸라 (Singapura)라는 사자의 도시라고 부르게 된 것에 유래한다. 그러나 싱가폴에는 나중에 들어온 동물원의 사자말고는 한 마리도 없던 곳이다.

1819년 영국의 스템포드 래플즈가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를 견제하기 위해 싱가폴을 조호르의 술탄으로부터 사들여 이곳을 자유무역항으로 건설했다.영국 식민지로서 자유·중계 무역항이 되었으며, 말레이 반도를 비롯하여 인근 여러 나라와 유럽 무역의 중심이 되었다. 1921년에는 영국군의 기지가 건설되어 군사·경제적으로 영국 식민지배의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군에 점령당하여 쇼난섬[昭南島]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며 3만여명이 일본군에게 학살당했다. 싱가폴의 나이든 택시 운전사가 재패니스? 라고 하면 후딱 코리언이라고 답하는 게 좋다. 그리고 종전 후에는 다시 영국 식민지가 되었다. 그 후 중국인 중심의 반(反)식민지운동이 활발해지고 1959년 6월에는 새 헌법의 공포와 함께 싱가포르에도 자치권이 부여되어 자치령이 되었다. 63년에는 말레이연방·사바·사라와크와 함께 ‘말레이시아’를 결성하여 말레이시아 연방에 편입되었다가 많은 세금의 요구와 이관요와 중앙정부의 계속된 대립으로 65년 8월에 분리, 독립하였다

중국인. 말레이인. 인도 파키스탄인. 유럽인. 유럽 아시아 혼혈인 등이 살고 있으나 인구의 75%는 중국인이며, 정치와 경제의 실권은 그들이 쥐고 있다. 언어는 영어. 말레이어. 중국어. 타밀어가 공용어이다. 종교도 여러 가지이며 중국인은 불교, 말레이인은 이슬람교, 인도 파키스탄인은 힌두교. 이슬람교. 시크교, 유럽인과 유럽 아시아 혼혈인은 대체로 그리스도교를 믿는다.

원래 중국계가 주류를 이뤘던 싱가폴의 국민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었으나 일본점령기동안 항일투쟁이 전개되면서 정치적 활동이 많아졌으며 사회주의 정당인 노공전선과 인민행동당이 결성되었다. 노공전선은 1955년 집권하였으며 1959년에는 청년,노동자층을 기반으로 하는 인민해동당이 집권하여 이관요가 수상에 올랐다. 그러나 인민행동당의 이관요가 사회주의적 경제체제에서 노사협조 등과 같은 보수적 정책을 펼치자 인민행동당의 급진파들은 61년 반기를 들고 사회주의 전선을 결성하였지만 이광요에 의해 저지당했다.


싱가폴은 경제적으로 자유무역에 의존하고 있으며 자타적으로 민주사회주의체제라고 일컫어지고 있지만 독특한 국가자본주의체제라고 본다. 우리나라의 박정희정권과 비교해본다면 박정희는 국자자본주의체제로서 모든 수익을 소수의 독점재벌이 가능하도록 기반을 조성했다면 싱가폴의 이광요는 경제성장에 대한 수익을 국민들의 복지정책에 활용했다는 점이다.

싱가폴은 실제적으로 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지 않으며 의원내각제이다. 잘 알려졌듯이 교통위반 벌과금이나 경범죄에 대한 벌금이 가장 강력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싱가폴에서는 껌 자체의 반입이나 유통, 씹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으며 담배 꽁추를 버리거나 지정장소 이외에 흡연을 하면 한국돈으로 20만원 이상의 벌금이 부과되는 곳이다.

그러나 한국처럼 법규를 지키기 힘든 상황을 만들어 놓고 적발하는 경우는 드물며 곳곳에 휴지통이 있으며 주차요금도 한국보다 훨씬 저렴하여 불법주정차를 할 필요가 없다.

국민들의 평균 생활수준이나 경제수준은 한국의 3배정도 이며 토지나 건물, 공장이 거의 국가의 소유로서 국민의 90%이상이 월 사오만원선의 임대료만 있으면 기혼자에게 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그래서 싱가폴의 경우 혼인신고를 먼저 해놓고 아파트(싱가폴은 콘도라고 한다)를 미리 임대 받는 편법이 존재하기도 한다. 외국인의 경우 최소 월 56만원이상의 임대료로 무척 비싼편이며 제한적이지만 토지소유가 가능하다. 전체국토의 면적이 서울과 비슷하여 면적을 줄이기 위해 보통 아파트들이 발코니가 없어 빨레를 국기게양하듯이 너는 진풍경이 많다.

한국처럼 야근하는 공장이나 철야하는 사무실은 찾기 힘들고 밤만 되면 모두 시내나 공원으로 나와 쇼핑을 즐기거나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관광객이나 외국인들이 많아 인종백화점 같기도 하다.
강력한 벌금제도나 처벌제도에도 불구하고 일부 청소년들이 오토바이를 고속으로 주행하는 경우도 보이며. 보통 거리에서 무단횡단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교통시스템이 첨단화 되어 있어 러시아워때도 고작 10분정도가 늦어지는 정도이며 지하철이 2개노선이 운영되고 있다.

싱가폴은 범죄발생률이 거의 없어 캄캄한 밤이나 새벽에도 안심하고 다닐수 있으며 여성에 대한 성희롱은 곤장을 때려 처벌하는 등 강력하게 적용하여 여성이 안심하고 살수 있는 나라이며 강간이나 매춘행위는 강력하게 규제되고 있고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싱가폴은 작은 나라여서 볼거리의 목적으로 관광을 한다면 2일정도면 충분하다.


주요 관광지로는 주롱 새 공원 (Jurong Bird Park), 싱가폴 동물원 (Singapore Zoological Gardens), 야간 동물원 (Night Safari)
, 주롱 갑각류 공원 (Jurong Reptile Park), 싱가폴 식물원 (Singapore Botanic Gardens & The National Orchid Garden), 센토사 섬 (Sentosa), 중국. 일본 정원 (Chinese and Japanese Gardens), 화파 빌라 (Haw Par Villa: Tiger Balm Gardens)
, 밍 빌리지 (Ming Village), 리틀 인디아 (Little India), 차이나 타운 (Chinatown), 말레이 빌리지 (Malay Village), 동해안 공원 (East Coast park)등이 있다.

여기서 센토사섬은 싱가폴 최고의 관광지라고 일컫어지며 역사관인 Fort Siloso, 교육관인 Images of Singapore을 관람할 수 있고 Sunset해변에서 바다 수영과 발리볼을 할 수도 있으며 Fantasy Island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와 함께 미끄럼틀을 타볼 수도 있다. Under water world는 센토사 최고의 관심거리 중의 하나인데 실제로 수중을 걸어다니며 물속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도록 설계되어 있다. 춤추는 분수 쇼도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센토사 섬에는 버스, 배 또는 케이블카를 타고 들어가도록 되어 있는데 케이블카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무역항인 싱가폴의 면모를 볼 수 있다.

싱가폴은 말레이지아, 태국, 인도네시아와 근접하여 싱가폴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하루 일정으로 말레이지아나 인도네시아 관광을 가기도 한다. 말레이지아의 경우 싱가폴 시내에서 말레이지아 국경을 넘는데 45분정도 밖에 안걸리며 싱가폴에 유일하게 있는 철도역은 말레이지아 소유로 말레이지아 행 기차가 운행된다.

싱가폴에는 교통시스템이 첨단화되어 있는 걸로 유명하다. 모든 자동차와 오토바이에는 R/F방식의 인식기가 장착되어 있으며 교통위반은 벌금이 비싸기때문에 꿈도 못꾼다.
택시는 한국처럼 일반택시와 고급택시가 있으며 요금이 다르다. 한국에서 모범택시라 일컫어지는 고급택시는 벤츠사에서 제작된 택시라는 점이고 버스 요금은 한국돈으로 750원 정도하는데 상당히 다양한 종류의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좌석버스로 구성되며 TV가 설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2층버스도 있고 기차처럼 객실이 두개로 이어진 버스도 다닌다. 버스요금 지불은 동전으로 해결되지만 대부분 ATM카드라는 교통카드로 요금을 지불방식을 이용하고 있다.
지하철 노선은 2개의 노선이 있으며 지하철역의 탑승구는 모두 자동문이 설치되어 있어 승객이 철도레일에 떨어지는 안전사고가 발생 할수 없게 되어 있어 인상적이다.

싱가폴당국은 도심가에 빌딩건축을 허가할 때 건물의 모양에 대해 철저하게 심의한다고 한다. 쌍둥이 빌딩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른 디자인으로 설계되어 건축되도록 하고 있으며 단순투박한 빌딩은 없고 모든 빌딩이 다름대로의 자태를 뽑내고 있다.

싱가폴은 한국인에게 관광지로는 먹고 즐기고 흔드는 스타일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곳이다. 주로 가족동반으로 함께 여행오면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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